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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 충격 피해 영상

by 해피타임스토리 2023.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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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 충격 피해 영상

히로시마 원자폭탁

오늘 꼬꼬무에는 그 피해자들이 나온다.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히로시마에 한국인들도 피해를 많이 받았을테고 그 규모는 매우 크다고 한다.

 

온라인에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맞고 살아남은 일본인들이 피해 사진들이 올라왔는데 매우 충격적이다.

원자폭탄으로 인해 옷이 녹아내리고 그 옷이 몸에 달아붙어 끔찍했던 영상들을 보니 맘이 아프다.

 

오늘은 꼬꼬무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대해 들어보기로 한다.

 

 

 

 

1945년 8월 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전 투하되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위력과 후폭풍, 그리고 역사의 선택 아래 그 흔적을 평생 새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꼬꼬무에서 방송이 된다.

 

 

 

 

부산에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 김형률 형제가 있다.

쌍둥이 동생은, 생후 2년이 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형률이만 남게 된다. 하지만 그 역시 한 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 기침과 수도 없이 재발되는 폐렴증상이 갈수록 심해졌지만, 정확한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증세로 막내아들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형률이 25살이 되었던 1995년,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된 가족들은 쌍둥이의 질병이 유전 질환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쌍둥이 형제의 희귀질환이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밤잠을 설친 사람은 형률의 어머니 이곡지 씨다. 모자의 운명에 드리워진 그늘은 대체 무엇일까?

 

 

 

 

때는 1945년,

당시 여섯 살이던 형률의 엄마 곡지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살았다. 먹고살기 위해 경남 합천에서 히로시마로 건너간 곡지네 가족은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곡지 가족들에게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로 다시 화제가 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실은 폭격기가 히로시마로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히로시마엔 곡지네 가족 말고도 무려 8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한국인들의 머리 위로, 이제 인류 최악의 무기가 떨어질 예정이다.

 

 

원자폭탄 투하 임무를 맡은 사람은 미군 조종사 폴 티비츠와 클로드 이덜리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고쿠라 등 최종 후보지 세 곳 중 두 사람의 결정에 따라 '리틀 보이'의 투하지가 결정됐다. 1시간 먼저 히로시마에 도착한 클로드 이덜리 소령은 폴 티비츠 대령에게 무전을 보내 폭격지를 히로시마로 제안했다.

 

그날 세 도시 중 히로시마가 폭격지로 결정된 충격적인 이유가 꼬꼬무에서 밝혀진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으로 투하된 '리틀 보이'는 지상 550m에 도달한 후 폭발하도록 설계됐다. 운명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폭발 순간 엄청난 섬광과 폭풍, 뜨거운 열기가 히로시마 시내를 덮쳤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히로시마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렸다. 이 검은 비의 정체는 무엇이고, 파멸의 땅 히로시마에서 곡지 가족과 또 다른 한국인들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되었을까.

 

 

 

오늘 꼬꼬무 이야기 손님으로는 SBS아나운서 김다영과 배우 정상훈, 여성흽합 댄스 크루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가 함께 한다.

 

꼬꼬무 예고 바로가기

 

[12월 7일 예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그곳에 있던 8만 명의 한국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교 양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05회 본방송 | 12월 7일 목요일 밤 10시 20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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